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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능력주의가 만든 차별의 사회를 고발하다

by bluebasketb 2025. 3. 21.

카타카의 대표 주제 유전자


영화 가타카는 인간 의지로 운명을 극복한 영웅담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하고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유전정보로 계급이 나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영화는 능력주의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어떻게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정당화하는지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빈센트는 선천적 열등자로 태어나 스스로를 증명해 내지만, 그 과정은 의심스럽고, 결코 영광스럽지만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오히려 성공한 자조차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시스템의 본질을 드러내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닮아 있는 디스토피아를 비추고 있습니다.

가타카는 유전학을 둘러싼 과학적 상상력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철저히 사회 구조를 모방한 시스템의 비판서이며,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공정과 정당성을 착각하는지를 드러내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유전자가 우열을 가르고, 선택과 기회를 결정하는 세상은 먼 미래의 우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연상케 합니다. 사실상 가타카에서 나온 유전자 편집기술은 현재도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하기도 합니다. 외모, 출신, 경제력, 건강 등 다양한 요소들은 이미 개인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타카는 그 서열을 숫자와 DNA라는 명확한 수치로 시각화함으로써, 냉정하면서도 직설적인 사회 비판을 제시합니다.

가타카, 공정한 사회라는 이름의 잔인함

가타카의 세계에서는 유전자 정보가 곧 인생의 자격을 결정합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월과 열등이라는 낙인을 동시에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이 구획됩니다. 면접을 보기 전부터, 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DNA 분석이 모든 가능성을 앞서 결정해버리는 구조입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지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와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력, 출신, 병력, 외모 같은 요소들이 보이지 않는 기준선이 되어 누군가를 미리 제외시키고 있지 않나요. DNA도 윤리적 문제나 다양한 기준 때문에 편집을 못하게 하고 있을 뿐, 어떠한 세력이 잘못된 기준을 세우면 가타카의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주인공 빈센트는 선천적인 심장 질환과 근시를 지닌 자연 출생자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미달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그 어떤 시험의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 대신 돌파를 선택합니다. 신분을 위조하고, 다른 사람의 유전정보를 빌려 사회 시스템을 교묘히 회피합니다. 그렇게 가타카 항공 우주국에 입사하고, 마침내 우주비행을 눈앞에 둡니다. 많은 이들은 그의 여정을 '의지의 승리'로 해석하지만, 그 서사를 다시 들여다보면 단순히 미화할 수 없는 복잡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빈센트가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은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범죄를 저질렀고, 타인을 이용했으며, 진실을 숨겼습니다. 시스템의 피해자로 출발했지만, 그는 그 시스템을 다시 역이용하며 또 다른 누군가의 가능성을 짓밟았습니다. 그가 위조한 신분의 주인공 제롬은 원래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지만, 삶의 실패와 좌절 속에서 생기를 잃어갑니다. 빈센트가 빛을 향해 나아갈수록, 제롬은 더 깊은 어둠 속에 잠겨버립니다. 이 대조는 영화가 단순히 개인의 성취만을 조명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성공의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침묵과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이처럼, 가타카의 세계에서 공정함은 객관성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배제와 선별의 논리를 고도화한 차별의 또 다른 얼굴일 뿐입니다. 실제로 공정하다고 할 수 없는 사회인 것 입니다. 사람들은 제도를 신뢰하고 순응합니다. 왜냐하면 그 제도가 정밀하고 정확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히 경고합니다. 인간을 수치로 환산하는 순간, 가장 인간적인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말입니다.

영웅 서사 뒤에 숨은 위선과 침묵

빈센트는 겉으로 보기엔 시스템을 뚫고 꿈을 이룬 이상적인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전통적인 영웅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는 타인의 삶을 훔쳤고, 무고한 사람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했으며, 특정 사건에서는 살인에 연루되었을 가능성마저 암시됩니다. 영화는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절대적으로 옳은 인물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게 남깁니다. 그렇게 관객은 빈센트를 전적으로 응원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갈등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빈센트의 형제 앤턴 역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유전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타고났고, 그런 자신감 위에서 형을 멸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의 경쟁, 반복되는 자존심 싸움 속에서 그는 빈센트에게 패합니다. 유전적 우월이라는 근거가 무너지는 순간, 앤턴은 자신이 믿어온 질서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오히려 진실을 덮고 상황을 조작하려 듭니다. 이 장면은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도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강자일수록 실패에 약하다는 진실은, 영화가 지닌 가장 냉철한 통찰 중 하나입니다. 또한, 제롬이라는 인물은 영화 전체의 핵심적 아이러니를 품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이상적으로 설계된 유전자의 소유자였지만, 인생에서 좌절하고, 자기혐오에 빠집니다. 결국 그는 빈센트에게 자신의 신분을 내어주고, 조용히 삶을 마감합니다. 이들의 관계는 우정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필요한 만큼만 감정을 허용한 동맹에 가깝습니다. 빈센트는 제롬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결말에 어떠한 도덕적 전환점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죽음은 제도의 비극을 배경처럼 깔아주는 장치처럼 지나가버립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타카는 단순한 승리 서사를 해체합니다. 꿈을 이룬 이가 정말로 옳았는지, 혹은 시스템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을 이용한 자가 진실로 저항자였는지,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에게 그 질문을 맡기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불편하면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가타카가 보여주는 미래는 정말 먼 이야기일까?

가타카가 그리는 사회는 어디까지나 미래의 디스토피아이지만, 그 뼈대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치화된 데이터에 의해 판단받고, 정량화된 성과로 가치를 입증받습니다. 성적표, 이력서, 건강검진 수치, SNS 지표까지도 누군가의 가능성과 품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유전 정보를 통해 이 구조를 압축했을 뿐, 그 본질은 우리가 이미 발을 담그고 있는 세상입니다.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유전자 편집이 현실화되고, 생명을 설계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지만, 윤리와 공감, 연대는 과연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가타카는 그 물음에 명확히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빈센트와 제롬, 앤턴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실패와 타협, 침묵을 보여주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공간을 남깁니다.

빈센트는 결국 우주로 나갑니다. 하지만 그것이 영광인지 파멸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의 심장은 언제 멈출지 모르고, 그의 성공은 수많은 은폐와 희생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이상을 이뤘지만, 그 이상이 누구의 것을 빌려서 가능했던 건지, 영화는 조용히 되묻습니다. 이 작품은 누가 승자인가를 결단지어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승리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하게 만듭니다. 능력주의가 낳은 구조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쉽게 타인을 도구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회는 그 잔인함을 어떻게 합리화하는가. 지금 이 시대에야말로 가타카는 더 현실적인 경고가 됩니다. 이제는 그 질문을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로만 넘길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