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바이센티니얼맨] 감정을 배운 AI의 인간성 실험

by bluebasketb 2025. 3. 31.

사람보다 나은 인성을 가진 바이센티니얼맨
사람보다 나은 인성을 가진 바이센티니얼맨


거의 10-20년 전에 OCN이나 슈퍼액션 같은 영화채널을 틀면 종종 해주었던 영화, 바이센티니얼맨. 영화관에서 본 것은 절대 아니었고 영화채널에서 할 때마다 흥미롭게 봤던 영화입니다. 찾아보니 1999년에 개봉한 몇 년만 더 지나면 개봉 30년이 되는 영화더라구요.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다시 보아도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로봇 앤드루를 가족을 받아들이는 내용이었는데, 감정이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기계가 사람처럼 변해간다는 설정을 넘어, 기계를 진짜 사람처럼 취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나오는데 AI가 빠르게 인간을 닮아가고 있는 지금 같은 시대에 이 작품은 예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와닿습니다. 과학 상상화 그리기 때 그려왔던 그림이나, 공상과학으로만 보였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현실과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사람으로서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로봇이 AI로 진화하다

처음에 앤드루는 가사 일을 돕는 로봇이었습니다. 어떤 명령이 주어지면 그대로 수행했고, 생각하거나 느낀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기능 안에서만 움직이던 그 기계가 어느 날 나무 조각을 만들게 됩니다. 누군가가 그 조각을 보고 감탄하는 순간, 처음으로 자신이 한 행동에 의미가 실릴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주는 충격은, 프로그래밍된 명령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조용히 변화가 시작됩니다. 처음엔 미세한 감각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자라나고, 표현의 방식도 달라집니다.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점점 더 깊어지고,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묻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인간과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이 단순한 응답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앤드루는 달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유를 원하게 되고, 법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납니다.

어느새 앤드루는 단순한 기능의 집합체가 아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성하려는 존재로 바뀌어 있습니다. 행동에는 이유가 담겨 있고, 선택에는 감정이 실려 있습니다. 기계라고 보기엔 너무도 인간적인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사고 과정은 더 이상 단순한 명령 반응의 알고리즘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외부의 설계가 아닌, 앤드루 스스로의 알아챈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정체성에 머물지 않으려는 태도가 오히려 더 발전된 기계같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 삶을 바꾸는 방식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스스로 한계를 인지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오히려 사람보다 더 단단해 보였습니다.

감정이 생긴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

앤드루가 감정을 가지기 시작한 장면은 아주 작은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잠기듯 머무는 표정, 누군가의 슬픔에 말없이 반응하는 자세 같은 것들이 조금씩 감정의 흔적을 남깁니다. 무언가 느꼈다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가 가사 일만 하던 로봇이던 때와는 다릅니다. 처음엔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데 그쳤지만, 점차 자신 안에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쪽으로 확장됩니다. 기계가 사람을 보고 학습하는 것과 같은 과정일까 싶습니다. 특히 주인의 손녀를 향한 마음은 사람과의 교류할 수 있는 감정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 같은 것들이 당연히 따라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설명도 어려운 감정이기에, 앤드루가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사람보다도 나아 보입니다. 이런 정말 사람 같은 감정이 계산이나 명령이 아닌 자율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감정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기쁨도 있지만 외로움이나 두려움, 상처 같은 감정도 함께 따라오니까요.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감정 때문에 힘들어지는 순간도 많습니다. 로봇 앤드루는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하나씩 배우면서 품어나갑니다. 힘들어하면서도, 그 감정을 받아들입니다. 지금의 AI 기술은 감정을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감정을 모방하고, 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방향이나 선택이 들어가진 않죠. 반면 앤드루는 감정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바뀌고, 삶을 바꿔나갑니다. 감정이 삶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 그는 더 이상 기계의 몸을 가진 로봇이라기 보다 기계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명을 갖고 있는 것처럼요.

인간성이라는 건 무엇인지

시간이 흐르면서 앤드루의 외형도 점점 사람과 비슷해집니다. 피부, 표정, 목소리까지 모든 면에서 사람과 구분되지 않게 되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언맨의 자비스가 좀 떠오르긴 합니다. 자비스에서 비전으로 기계가 아닌 생명체로 바뀌었죠. 이처럼 앤드루도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상에 스며드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아무리 변해도,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기계라는 인식뿐입니다. 그때 앤드루는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늙어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무한히 작동할 수 있었던 존재가 유한함을 선택합니다.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앤드루에게는 인간과 같은 방향을 향한 의지였습니다. 노화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은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걸 설명해 줍니다. 삶은 끝이 있어서 의미가 있다는 말을 로봇한테서 들으면서 나보다 나은 더 인간같은 존재가 아닐까 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고, 마지막까지 책임지려는 태도는 사람답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마지막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는 장면은 기계로써의 결정이 아닌 생명체로써의 결정입니다.

감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관계 속에서도 앤드루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파괴하는 감정보다, 이해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이 더 강합니다. 책임감 있고, 따뜻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인간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 로봇이 이런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게 참 신기하게 다가옵니다. 실제 인간들은 악한 모습도 많이 보이는데 저렇게 선택적으로 좋은 면만 드러내려고 하는 로봇이라니, 역시 사람보다 나은 게 맞습니다. 바이센티니얼맨은 기술 이야기를 넘어, 존재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과학기술이 더 발전되어 정말 사람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를 알게 되면 어느 먼 미래에는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럼 이 존재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준이 점점 모호해져 가는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