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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포스터
세 얼간이 포스터

학교마다 자주 틀어주는 영화였던 세 얼간이. 요즘도 학교에서 영화 틀어주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틀어줄 만한 영화라고 생각되긴 합니다. 인생 첫 인도 영화를 세 얼간이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우선 저는 그랬습니다. 얼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제목만 보고는 웃긴 이야기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다들 최애 영화 중에 왜 세 얼간이가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세 명의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파르한, 라주, 그리고 란초. 이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명문 공대 ICE에 입학합니다. 서로 전혀 다른 환경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웃고 부딪히며 변해갑니다. 파르한은 사진을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뜻에 맞춰 공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라주는 가난한 가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기에 마음은 늘 불안했고, 불만도 쌓여갔습니다. 유일하게 란초는 다른 편이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무조건 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묻고, 이해되지 않으면 납득할 때까지 파고듭니다. 수업 중 교수의 질문에 틀을 벗어난 대답을 하고, 남들이 눈치를 볼 때도 당당히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짜 존재하기 어려운 특이 케이스. 아무래도 눈치문화라서 란초 같은 학생이 태어나기 힘든 곳입니다. 어쨌든 란초는 주변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 됩니다.

입시 지옥 교육 시스템 속 청춘의 이야기

세 친구가 속한 학교는 인도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곳입니다. 좋은 성적, 안정된 직장, 명문 학위. 모든 것이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구조였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늘 불안에 시달리고, 경쟁에 내몰립니다. 우리나라랑 다를 곳 없는 시스템이죠. 사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긴 할 것입니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배움보다는 생존에 가까웠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야 했습니다. 파르한과 라주가 묵묵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동안, 란초는 자꾸 다른 생각이 듭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뭔지, 지금 이 길이 맞는지 돌아봅니다. 성적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학교에서, 한 학생이 극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학문은 사람을 키우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무기가 되어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끔직한 일을 겪음에도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있죠. 세 얼간이들의 행동은 억지로 웃기려는 게 아니라 일상의 틀 안에서 벌어지는 작고 따뜻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미소를 만들어 줍니다. 란초는 엉뚱하면서도 진심 어린 조언으로 친구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됩니다. 파르한에게는 네가 좋아하는 걸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라주에겐 실패해도 괜찮다고 등을 두드려줍니다. 성적이 사람을 규정하는 곳에서 그런 말은 새삼스럽게 다가왔고 이렇게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꽤 마음에 위안이 되고 새로운 길을 찾게 하는 힘이 됩니다. 세 사람의 우정은 시험이나 취업이 아닌,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함께 밤을 새우고 시험을 앞두고 서로를 응원하고, 때로는 다투고 화해하면서 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더 알게 됩니다. 파르한은 결국 아버지에게 자신의 꿈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라주는 생명의 끝과 가까운 곳을 다녀온 뒤 삶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만큼 친구들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자유로운 배움을 위한 반항

란초가 보여주는 철학은 반항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는 교과서 안의 내용을 외우는 것 말고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죠. 이런 친구들이야 말로 진짜 대학을 가고, 대학원 가고 그래야 하는데 말입니다. 교수와의 대립도 잘못된 것을 바르게 짚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란초의 말 중 하나는 알 이즈 웰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명대사죠. 세 얼간이 하면 알이즈웰, 알이즈웰 하면 세 얼간이가 떠오를 정도. 두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친구를 위로할 때도 그 말을 건넵니다. 아무 일 없을 거라는 확신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의 태도. 삶을 대하는 자세가 그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 중에도 노트 앞쪽에 이 대사를 적어놓은 것을 많이 봤습니다.

주입식 학습을 보여주는 사일렌서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이 준비한 발표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뜻도 모르고 외운 문장을 그대로 내뱉는 모습은 씁쓸함을 남깁니다. 그 학생은 학점과 결과만을 바라보며 살아와서 실수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란초는 틀릴지라도 자기 방식으로 말하고, 자기 생각으로 움직입니다. 본인이 직접 생각해서 이룬 것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배움의 속도나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확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란초는 친구들에게만 영향을 준 게 아닙니다. 그가 있던 장소 모두가 조금씩 바뀝니다. 교수님은 당연히도 란초를 좋게 보지 않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뀝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지만, 진심은 결국 닿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삶의 방식이다

영화의 후반부, 란초의 진짜 정체가 드러납니다. 약간 반전 영화급으로 좀 놀랐습니다. 그는 원래 란초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녔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공부했고, 친구들과의 추억도 그 이름 아래 쌓았습니다. 부자집 아들인 진짜 란초를 대신해서 최고 유명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의 진짜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요. 오히려 그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이름보다 삶의 방식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그 장면에서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친구들은 사라진 란초, 아니 차란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먼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본인이 추구하던 방식으로 배움을 전하고 있는 차란을 다시 만납니다. 그는 거창한 타이틀도, 화려한 명성도 없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이 세 얼간이들의 우정이 부럽습니다. 친구를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찾아나서는 저런 의리. 그리고 사람을 이름이나 학위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를 보는 그런 마음이 아름다웠습니다. 세 얼간이들의 청춘 영화라고 봐도 기분이 좋습니다. 웃음 속에 현실의 고민이 있고, 유쾌한 장면들 사이사이에도 날카로운 현실 비판들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도 다를 것이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입시 교육. 부정 입학도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스카이캐슬도 생각나고 그러네요. 게다가 고등학생 때 봤던 느낌이랑 더 커서 본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달랐습니다. 조금 더 웃음이 컸던 영화였던 것 같은데 이제 그렇게 웃음이 나온다기보다 학습에 대한 열망이나 아쉬움을 느껴봐서 가슴이 따끔따끔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세 얼간이를 보고 잊고 있던 분들이 꼭 다시 보면서 새로운 느낌을 느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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