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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소울. 물론 어린이가 봐도 문제없지만, 어른한테 훨씬 더 좋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죽음 뒤의 세계와 재즈가 주 소재지만 삶 자체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내고 있냐고요. 주인공 조는 재즈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재즈 피아노에 인생을 걸었고, 늘 무대에 서는 순간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그 꿈은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아서 그를 지치게 했고, 그는 자신이 일로 하고 있는 수업과 가족과의 일상도 그저 그런 일들로 여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 예상치 못한 사고로 태어나기 전의 세계라는 곳으로 가버리게 됩니다. 그는 그 세계에서 아직 지구에 가본 적 없다고 말하는 22번 영혼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얼렁뚱땅 지구로 가게 되어 많은 일을 겪게 되며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존재의 목적보다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
조는 자신이 재즈라는 음악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 무대는 그에게 전부였고, 다른 시간은 전부 기다림이자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뤄야 할 꿈이 매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어머니와의 대화조차 늘 벽이 느껴졌습니다. 사고로 사후세계같으면서도 생명이 태어나는 세계에 떨어져서 만난 22번 영혼에게도 그 스파크만 찾으면 삶이 완성될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22번은 다른 영혼들과는 다르게도 수많은 멘토를 만나고도 여전히 삶에 대한 의욕이 없습니다. 지구에 가는 걸 두려워하면서 자신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고 말합니다. 조는 처음에 의아해하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목적이 없는 삶은 방향도 없다고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와 22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왜 사는가라는 생각에 점점 무게가 실립니다. 삶의 가치는 커다란 목표나 성취가 아니라, 느끼는 순간순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게 됩니다. 22와 함께 걷던 거리에서 불어오는 바람, 나무 아래 떨어진 씨앗, 피자 한 조각의 맛, 거리의 음악 소리 같이 일상에 항상 존재하는 평범한 순간들 속에 삶이 있다는 걸요. 그제야 조는 자신이 진짜로 갈망했던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22번이랑 경험해 나가는 동안 조는 과거의 후회를 꺼내보고, 그 안에서 상처도 마주하게 됩니다. 무대 위에 서 본 그 순간마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걸 느끼며, 삶의 공허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되짚습니다. 목표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허전했고, 이유 없이 슬퍼졌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 감정은 자신이 진짜로 바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도 몰랐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22와의 만남을 통해 조는 존재의 의미를 곱씹게 됩니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질문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삶은 성취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 영화는 이 메시지를 설교처럼 들리지 않게, 조와 22의 경험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삶의 아름다움은 순간순간
22는 지구를 경험해보겠다고 조의 몸에 들어가 봅니다. 처음 마시는 공기,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 따뜻한 햇빛,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 이 모든 것이 22에게는 전혀 새로운 세계입니다. 작은 피자 한 조각도, 재즈 음악이 흐르는 거리도, 그저 지나가는 개와 눈을 맞추는 순간조차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지금까지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없던 22가 점점 살아보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됩니다. 뉴욕이라는 도시 배경은 항상 그 자체로 하나의 아이템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거리의 공기, 택시의 경적, 도넛 가게 앞의 향기, 손바닥에 스치는 컵의 온도까지도 애니메이션 안에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일상에 항상 지나치는 것들을 다시 느껴보게 만들죠. 현실처럼 섬세하게 표현된 그 디테일은 22가 느끼는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고 우리까지 새삼 깨닫게 만듭니다.
또 이와중에 고양이 미스터 미튼스와 조는 몸이 바뀝니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22는 인간 조의 몸을 통해 삶을 느끼고, 조는 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며 자신이 간과했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어김없이 눈물 포인트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조와 어머니가 진심을 나누는 순간은 가족 이야기에 약한 저에게 눈물 주르륵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조는 어릴 때부터 숨겨왔던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들어줍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제나 말로 다 표현될 수 없습니다. 가족과의 대화는 늘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 대화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답은 없어도 살아가는 이유
조와 22는 서로에게서 전혀 다른 세계를 봅니다. 조는 인생을 성취의 연속이라 생각했고, 22는 삶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조는 처음으로 목표 외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고, 22는 살아간다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정해진 길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습니다. 소울은 그래도 괜찮다고, 길이 없을 수도 있고, 정답을 몰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도 점점 길어지는 시대에, 어떤 일이든 10년 계속하면 장인이 된다고 하는데 하고 싶은 일이 또 바뀌면 어떨까요. 목표는 계속 바꿔나가고 적당한 성취감과 함께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는 22를 위해 자신이 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합니다. 영혼에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어스패스를 처음에 받았었는데, 그 때는 22가 아직 삶에 관심이 없어서 조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렇지만 조는 이미 삶을 경험해 보았고 꿈에 그리던 무대를 서보니 생각보다 큰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는 22에게 다시 어스패스를 양보합니다. 22가 지구에서 느낀 감정이 진짜고 중요하다는 걸 알아주고, 그 가능성을 지지해 줍니다. 조의 인생에서 가장 성숙한 순간이었습니다. 조도 그 사이에 큰 성장을 한 것입니다. 22는 여전히 자신의 스파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지구로 향합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한 경험 자체가 이미 22에게 스파크가 되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조는 22를 지구로 보내주고 영혼이 사라지는 세계로 향합니다. 그 때 영혼관리자가 조를 불러 세웁니다. 이때 영화 장면 신비스럽고 아름다웠는데 다시 보고 싶네요. 22를 위한 선택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인지, 조를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 합니다. 픽사다운 선택입니다. 이래서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조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오고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볼까 하고는 삶의 소중함을 배운 사람의 태도로 대합니다. 생각해 보면 시간은 유한한 것인데 매일 무한한 것처럼 쓰고 있는 요즘인 듯합니다. 소울을 보면서 삶은 진짜 소중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습니다. 매일을 살다 보면 언젠가 또 까먹겠지만, 이렇게 영화에 대해 한 번씩 떠올리면 다시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