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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멀티버스 속 공허한 나를 구한 건 가족이었다

by bluebasketb 2025. 4. 6.

지금도 갖고 싶은 돌멩이
지금도 갖고 싶은 돌멩이


제목이 매우 길어서 에에올이라고 불렸던 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는 훨씬 더 감동 넘치는 현실적인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수많은 우주, 수많은 가능성이 어지럽게 얽히는 이야기지만 정작 중심에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 흔들리는 가족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기억,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 자꾸 어긋나는 대화들. 멀티버스라는 장치를 통해 영화는 우리 모두가 겪는 작고도 복잡한 감정들을 정신없이 보여줍니다. 한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모습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중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멀티버스에 휘몰아치는 정체성 붕괴

영화의 중심에는 에블린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여성입니다. 그녀는 늘 바쁩니다. 손님 응대, 세탁 기계 고장, 세무서 서류 정리, 남편의 말투, 딸의 눈빛,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아버지의 존재까지. 이 모든 일들이 에블린에게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겨우 일을 하나씩 처리해 내는 듯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혼란과 피로,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일에도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어떤 관계에도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는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말은 하고 있지만 들리지 않고, 듣고는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 그녀는 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실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완전히 뒤집히는 일이 벌어집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던 남편이 이상한 말투로 말을 걸더니 곧이어 에블린은 수많은 우주 속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 세계 속의 에블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리사로 일하는 자신, 무술 고수, 영화배우, 심지어 손가락이 핫도그처럼 생긴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신까지. 영화를 보면서 이 정도의 세계관 설정을 한다고 싶은 마음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내가 살아오며 하지 못했던 선택들, 시도하지 못했던 길들, 포기했던 가능성들이 멀티버스의 나라는 존재가 해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에블린이 마음속에 간직해 온 하나의 소망들이 이루어진 세계로 보입니다. 멀티버스를 경험하면서 에블린은 처음에 즐거움과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러 버전의 자신을 보며,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왔다는 감정이 더욱 커져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많은 세계는 그녀를 압도하기 시작합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현재의 삶을 하찮게 보이게 만들고, 어떤 삶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그녀를 힘들게 합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가능성이 더는 기회가 아니라 짐처럼 느껴집니다. 그때 등장한 한마디가 에블린을 멈춰 세웁니다. 알파 유니버스의 남편 웨이먼드는 말합니다. 당신은 가장 실패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 말은 역설적임에도 뒤통수 맞은 것처럼 이해가 가는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순간들조차, 사실은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빈 공간이었다는 이야기. 현실도 그렇습니다. 도전과 함께 실패를 해야 문제점도 알 수 있고 또 나아갈 수 있듯이 실패라는 것으로 끝나는 인생은 없습니다. 에에올은 다양한 세계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이 선택의 결과값만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허를 맞이한 베이글 속의 딸

에블린의 딸, 조이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해도 무방합니다. 조이는 무심하고 쿨한, 소위말하는 냉소적인 성격인데 그 속에는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감정들이 오래도록 쌓여 있었습니다. 조이는 알고 보니 수많은 가능성과 결과를 이미 다 경험한 존재였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것도 특별하지 않게 느끼게 됩니다. 조이가 만든 모든 것을 담은 베이글은 바로 그 무의미함의 상징입니다. 모든 것이 있으나 가운데는 텅 비어서 아무 의미도 없는 공허함으로 가득한 세계입니다. 베이글이라는 소재가 등장했을 때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는 빵 하나로 공허를 표현해 냈다는 게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어떤 버전의 엄마도 날 이해하지 못했어. 이 말은 엄마를 탓하는 원망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포기와 슬픔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로 인한 외로움과 속상함이 조이를 베이글 안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조이와의 대립은 에블린에게 또 하나의 충격을 줍니다. 자신이 딸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서로 다른 언어로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라 여겨왔지만 마음의 거리는 생각보다도 더 멀었던 것입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에블린과 조이 같은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괜히 엄마 생각이 나서 베이글도 나오고 유머 요소들이 많음에도 눈물이 났습니다. 조이의 공허함은 철학적인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그녀는 엄마와의 감정교류를 포기하면서 냉소로 자신의 감정을 덮어두었고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무한한 선택 속 결국은 가족

마지막까지 에블린이 변화하게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중 하나는 남편 웨이먼드입니다. 웨이먼드는 모든 상황에서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에블린과 싸우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옆에서 함께 해줍니다. 나는 친절함으로 싸워. 친절한 사람은 사실상 제일 대단하고 무서운 사람입니다.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본인의 내면이 단단하고 수용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까요. 에블린은 웨이먼드의 방식을 받아들입니다. 멀티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싸움 속에서 그녀는 적에게 무기를 휘두르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숨겨진 감정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런 새로운 방식은 문제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감정 이해는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듯합니다.

저 베이글의 난리 속에서 조이는 떠나려 하고, 에블린은 그 손을 붙잡습니다. 네가 날 필요로 하지 않아도, 나는 널 사랑해. 이 말은 설명도 변명도 없습니다. 그 순간, 둘 사이에는 처음으로 진짜 연결이 생깁니다. 진실된 이해가 감정을 연결시켜 준 것이죠. 수많은 우주를 여행한 끝에, 에블린이 돌아오는 곳은 엄청난 능력을 가졌거나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계가 아닙니다. 반복되는 일상, 손이 거칠어진 세탁소,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남편과 딸과 함께하는 아주 평범한 삶입니다. 그 삶이 비록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는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된 가족이 있습니다. 상징적인 존재 중인 돌멩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이 아무 말 없이 돌멩이로 마주 앉았던 순간처럼, 말이 없어도 괜찮다는 마음. 서로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그 장면이 왜 그렇게 미치도록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돌멩이는 움직일 수 없음에도 내가 너에게 가겠다고 하는 에블린의 외침이, 우리는 결국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 영화 대표되는 상품으로 나왔을 만큼 돌멩이의 파급력과 인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신 하나도 없는 멀티버스 속에서 찾아가는 정체성과 가족과의 유대감. 정신머리 하나도 없는 멀티버스 세계관안에서 너무나 따뜻한 정체성 찾기와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부모님한테 연락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