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10-20년 전에 OCN이나 슈퍼액션 같은 영화채널을 틀면 종종 해주었던 영화, 바이센티니얼맨. 영화관에서 본 것은 절대 아니었고 영화채널에서 할 때마다 흥미롭게 봤던 영화입니다. 찾아보니 1999년에 개봉한 몇 년만 더 지나면 개봉 30년이 되는 영화더라구요.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다시 보아도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로봇 앤드루를 가족을 받아들이는 내용이었는데, 감정이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기계가 사람처럼 변해간다는 설정을 넘어, 기계를 진짜 사람처럼 취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나오는데 AI가 빠르게 인간을 닮아가고 있는 지금 같은 시대에 이 작품은 예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와닿습니다. 과학 상상화 그리기 때 그려왔던 그림이나, ..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시선으로 보기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퀴즈쇼라는 형식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의 굴곡과 사랑 그리고 형제 사이의 복잡한 감정까지 촘촘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자란 소년이 인도의 유명한 퀴즈쇼에 출연해 문제를 거침없이 맞혀 나가는 이야기. 얼핏 보면 조금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영화가 들려주는 과거의 장면들은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동화처럼 구성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날것 그대로였고, 이 영화는 마냥 꿈같은 성공담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는 깊은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 자체가 약간의 과장이 섞인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속에서 쌓인 기..

겨울에 유난히 더 생각나는 영화 캐롤은 사랑얘기라고 말하기 쉬워 보여도, 보고 나면 그냥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깊은 영화입니다. 1950년대 미국이라는 꽤나 답답했던 시절 안에서, 두 여자가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머뭇거리고 또 멀어졌다가 다시 바라보는 그 감정선을 너무나 세심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한쪽에는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둔 캐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딛으려는 테레즈가 있습니다. 이 둘은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우연히 마주치고, 그리고 천천히 이끌리게 됩니다. 근데 그 감정이 그냥 자연스럽게 자라나긴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사랑을 키우기보다, 감추고 피해야 했던 때였던 거죠.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건 두 사람 사이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 감정을 둘러싼 ..

한 번 보고 잊는 영화들이 많은 요즘, 이 영화는 보고 나서도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행복이나 그런 느낌으로 오래남은 것은 아니고 충격이 컸던 것 같습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 어렵고, 누군가에게 쉽게 추천하기에도 조심스러운 작품입니다.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다뤄지는 감정들이 워낙 낯설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사건보다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보는 동안 마음 한쪽이 계속 눌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찜찜한 감정이 계속 남습니다. 특히 평범한 일상의 틈새에 스며든 위태로운 공기가 자꾸 마음을 건드리는 것 같았습니다.정신질환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없는 표정처음부터 케빈은 뭔가가 달랐습니다. 세상과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처음 영화 설명을 봤을 때, 익숙한 기억상실 스릴러인가 했습니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고, 진실을 찾아가는 구조는 많이 봐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면 분위기나 감정선이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기억상실 너무 클리셰 같다 했는데 다른 느낌의 기억상실 영화였음. 매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기억이 리셋이 되는 약간 메멘토스러운 느낌. 누구 말이 맞는지조차 헷갈리고,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하나같이 수상하게 느껴지면서 불안은 점점 커집니다. 스릴러 장르답게 긴장감은 유지되지만, 감정선이 끌고 가는 흐름이 더 주요하게 와닿습니다. 크리스틴의 하루는 기억이 계속 끊기는데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의 흐름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다채로워집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과연 어떤 감각일까라는 ..

축축하고 어두캄캄한 분위기가 계속 되는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처음 봤을 때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봤을 때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영화입니다. 첫 관람 때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끌려들어가게 됩니다. 폐쇄된 섬, 실종된 환자, 수사관이라는 익숙한 구도가 펼쳐지니까요. 어두운 바다를 배경으로 정신병원이 자리 잡은 섬이라는 설정만으로도 불안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자연스럽게 범인을 추리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수사극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다른 감정들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 특히 주인공이 겪는 혼란과 무의식의 흐름에 집중합니다. 보고 난 뒤 머릿속을 정리하다 보면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두 번째 관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의 본심이 드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