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시선으로 보기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퀴즈쇼라는 형식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의 굴곡과 사랑 그리고 형제 사이의 복잡한 감정까지 촘촘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자란 소년이 인도의 유명한 퀴즈쇼에 출연해 문제를 거침없이 맞혀 나가는 이야기. 얼핏 보면 조금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영화가 들려주는 과거의 장면들은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동화처럼 구성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날것 그대로였고, 이 영화는 마냥 꿈같은 성공담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는 깊은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 자체가 약간의 과장이 섞인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속에서 쌓인 기..

겨울에 유난히 더 생각나는 영화 캐롤은 사랑얘기라고 말하기 쉬워 보여도, 보고 나면 그냥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깊은 영화입니다. 1950년대 미국이라는 꽤나 답답했던 시절 안에서, 두 여자가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머뭇거리고 또 멀어졌다가 다시 바라보는 그 감정선을 너무나 세심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한쪽에는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둔 캐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딛으려는 테레즈가 있습니다. 이 둘은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우연히 마주치고, 그리고 천천히 이끌리게 됩니다. 근데 그 감정이 그냥 자연스럽게 자라나긴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사랑을 키우기보다, 감추고 피해야 했던 때였던 거죠.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건 두 사람 사이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 감정을 둘러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