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는 기존 사극 영화들과는 다른 접근을 통해 관객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인 사극들이 왕과 정치권력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이 작품은 가장 낮은 계층에 속한 광대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엄격하고 위계적인 체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중심인물은 체제 바깥에 위치한 이들이며, 이야기는 그들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이 같은 구성은 사회의 위계 구조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읽히며, 예술이 가진 힘이 어떻게 권력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광대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희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권력을 향해 발화하는 언어이며, 때로는 진심을 감추지 못한 권력자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습니다.영화는 웃음 안에 감정의 진폭을 담아냅니다. 웃음은 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고도의 정치적 비판과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극한의 생존 상황이라는 배경을 활용해, 사회가 어떻게 인간의 신념을 설계하고 그것을 통해 지배를 정당화하는지를 봉준호 감독의 방식대로 보여줍니다. 시스템은 권력을 행사하는 기계적 틀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을 조종하고, 그 믿음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굳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주입됩니다. 어느 나라나 시스템은 저렇게 만들어집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회사나 학교 같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국열차는 그 주입된 신념이 어떻게 인간을 기계처럼 움직이게 만들고, 결국 인간성 자체를 마모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폐쇄된 열차 속 사회를 통해, 우리가 믿고 따르는 질서가 얼마나 취약하고 조작 가능하며, ..

영화 가타카는 인간 의지로 운명을 극복한 영웅담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하고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유전정보로 계급이 나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영화는 능력주의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어떻게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정당화하는지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빈센트는 선천적 열등자로 태어나 스스로를 증명해 내지만, 그 과정은 의심스럽고, 결코 영광스럽지만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오히려 성공한 자조차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시스템의 본질을 드러내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닮아 있는 디스토피아를 비추고 있습니다.가타카는 유전학을 둘러싼 과학적 상상력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철저히 사회 구조를 모방한 시스템의 비판서이며,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공정과 정당성을 착각..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는 기존 공포 영화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작품입니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가 어두운 조명과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 집중한다면, 미드소마는 그와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합니다. 푸른 하늘, 꽃이 가득한 들판, 따스한 햇살 속에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오히려 더 깊은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보통은 밤이 찾아올 때 무서움을 느끼지만, 이 영화는 대낮의 밝음 속에서 관객의 심리를 서서히 조여옵니다. 보는 내내 마음 한편이 불편한 이유는, 그 환한 풍경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과 점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주는 불쾌함은 단지 시각적인 요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감정과 가치관을 뒤흔드는 데서 비롯됩니다.주인공 다니는 극단적인 상실을..